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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 자동소총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11-08 09:28 | 6,357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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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 자동소총 (가톨릭신문 2002811)

 

2차 세계대전 당시 에이케이47 자동소총을 개발한 옛 소련의 과학자 칼라슈니코프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힌 자신의 심정이다. “한때 내 가슴은 이 총을 능가하는 총이 앞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지금은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내가 만든 총이 나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많은 불행을 초래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에이케이47 자동소총은 성능에 비해 값이 싸고 고장이 적어 게릴라들이 선호하였던 것으로 베트남전과 중동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각종 테러 등에 사용되어온 총이다

 

이 총은 지금까지 개발된 그 어떤 소총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총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무기는 독일군의 무기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었고, 독일군의 등등한 기세는 그야말로 세계평화를 위협하였던 터라 칼라슈니코프의 소총개발 의도는 명백히 국가 안보와 세계평화의 기여라는 거대한 포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후 60년이 지난 오늘날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자부심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니 그의 노년이 한층 더 슬프게 느껴진다.

 

19429월 미국에서는 원자탄 개발 계획이 맨해튼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되었고, 이 계획에는 막대한 예산지원은 물론 유능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참여한다. 정부의 지원과 유능한 과학자들의 참여로 원자탄 개발에 따른 난제들은 하나둘씩 해결되어갔고 결국 1945년에는 이 엄청난 계획이 완성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으로 기록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원자폭탄 투하로 이어졌다. 원자폭탄 제조의 실제적인 총책이었던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첫 실험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라는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대통령에게 양심의 가책을 하소연했고, 그후 수십년이 지나서도 죄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원자폭탄 제조를 위해 선두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그였지만 전쟁 후 그는 역설적이게도 핵무기 제조금지와 사찰, 기존 핵무기폐기, 이를 위한 국제기구 설치를 골자로 한 오늘날 핵 정책의 뼈대를 이루는 장본인이 되었다. 

 

최근 생명공학계에서는 인간배아 복제 허용 입법과 관련하여 논쟁이 매우 뜨겁다. 아니 정부가 앞장서서 이미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명공학 산업 경쟁력까지도 확보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칼라슈니코프와 오펜하이머가 우리 모두에게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는가? 인간배아 복제에 대한 연구나 실험, 더 나아가 인간개체 복제로 이어지게 될 통제할 수 없는 충격적, 비극적 상황이 가져오게 될 인류의 미래에 대해 책임있게 말할 수 있는 과학자의 양심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기이다

 

오펜하이머와 같은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던 양식있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핵무기가 가진 그 엄청난 파괴력으로써 인류 대살상에 사용되리라는 것을 미리 예상했더라면, 그리고 그 핵무기가 오늘날 인류에게 가장 큰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과연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겠는가? 거대한 과학 연구가 어느 순간에는 자신들의 통제력 밖으로 떠나 버린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역사의 산 교훈들을 통해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동익 레미지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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