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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사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11-14 15:40 | 6,047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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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의사 (2002년 9월 8일, 가톨릭신문)

 

  지난 91일부터 나흘간 제 21회 세계 가톨릭의사협회 총회 및 학술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모두 30개 나라에서 참가한 300여명의 의사들이 모여 함께 한 시간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 의사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다짐의 시간이었다. 각각 자신들의 국가에서 가톨릭 의사로서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솔한 경험담과 증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귀중하였지만 특별히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처럼 다양하게 발달하고 있는 의료 형태를 통해 제기되는 숱한 윤리적 혼란에 대해 가톨릭 의사로서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를 함께 찾을 수 있었고 또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신의 역할을 대신하기를 좋아한다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곧 의사들은 환자들을 돕는데 있어서 자주 결정적인 입장에 서게 되며,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게끔 만들기도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의사들은 치료하고 돌보는 과정에서 거의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고, 절름발이가 걷고, 귀머거리가 듣고, 장님이 보게되는 것을 경험한다. 오늘날의 의료기술의 발달은 그 농담을 거의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 왔다.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의학적 진보들을 돌아다 볼 때, 그러한 경험들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며, 오늘날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적 발전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며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또 어떤 기적이 하나의 현실로 다가올지를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과거에는 기적이라고 했던 것들이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생명복제기술, 유전자치료기술 등은 그야말로 가까운 미래에 인류의 삶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송두리째 바꾸어 놓겠지만 우리 모든 인류가 반드시 경계해야하는 것은 그러한 변화가 윤리적 기준과 한계로 지지되고 있는가일 것이다. 삶의 질적 향상이 마치 하나의 우상이 되어가면서 실제 현실에서 삶의 질적 향상을 방해한다고 여기는 여타의 것들을 삶의 질이라는 미명으로 가차없이 파묻어 버리는 숱한 시도들에 대해 가톨릭 의사들은 결코 방관자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낙태와 안락사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와 실험을 위한다는 미명의 인간 배아 파괴 행위 등이 이 시대의 새로운 우상이 되어가고 있다면 가톨릭 의사들은 이 우상들을 과감하게 파괴하는 모세와도 같은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이 시대가 예측하는 가능성과 변화들은 반드시 의사들에게 한가지 윤리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곧 의사들은 자신들의 고귀한 소명으로서의 의료 직무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시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결코 소홀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사명까지도 함께 부여받고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만일 의사가 자신의 역할을 일률적인 작업 전체의 한 부분만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의료행위라는 기술을 파는 피고용인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또 만일 의사들이 스스로의 역할을 오로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한다면 의사라는 숭고한 직무는 여타의 단순한 직업 외에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도움과 봉사는 단순히 인간 신체에 대한 치료 이상의 것이다. 이는 정신적인 도움까지도 포함하는 인간 인격 전체를 향한 도움이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 의사들이 자신의 직무를 통해 독특한 방식으로 공헌하는 참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참된 의사이시며,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치유와 구원이 전인적 치유이며 동시에 전인적 구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톨릭 의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하시는 능력과 봉사를 본받아 자신의 직무를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숭고한 사명을 실천하는 의사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로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르침을 내가 만나는 환자들을 통해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의 보다 직접적인 협력자로서의 가톨릭 의사들은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익 레미지오 신부 (2002년 9월 8일,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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