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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태석 신부가 뿌린 사랑, 의사 57명으로 '부활'하다

작성자 실로암
작성일 21-04-20 05:34 | 2,276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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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을선 기자

 

불교신자인 감독은 왜, 은퇴자금을 털어 사제의 삶을 조명했을까 

 

"미안합니다"라는 문자 한 통 

 

바쁜 아침 출근길,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남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린 故 이태석 신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에 이어 영화 <부활>을 연출한 구수환 감독이었습니다.

 

특히, 최근작인 다큐멘터리 영화 <부활>은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의료 봉사하던 이태석 신부가 48세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 어린 제자들이 성장하며 벌어진 기적을 감동적으로 조명해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불교 신자임에도 가톨릭 사제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연이어 제작하고, 시사고발 피디 출신임에도 따뜻한 사랑을 담은 영화를 제작해 더욱 눈길을 끈 감독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구수환 감독에게서 미안하다는 메시지라니 대체 무슨 일일까? 회사로 재촉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찬찬히 문자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요지는 다큐멘터리 영화 <부활>이 6개월 만에 전국의 주요 영화관에서 3월 26일 재개봉을 하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업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렇게 재개봉을 하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렇게 좋은 소식에 그는 왜 미안했던 걸까?

 

일단 축하의 인사를 남기고, 며칠 뒤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대뜸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기자 : 감독님, 좋은 일인데 왜 제게 미안하시단 겁니까?

 

구수환 감독 : 더 많은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의 삶을 보고, 그들도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 <부활>을 제작했습니다. 이번에 감사하게도 재개봉을 하게 돼 혼자서 전국을 다니며 이 영화를 알리려고 하다 보니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연락해 괜히 부담이 될까 봐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게 됐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영화를 다시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여건도, 시간도 부족해 고민이 많습니다. 이번 상영은 기간도 짧고, 상영 횟수도 대부분 하루 한 차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극장에선 관객 수를 보고 확대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극장 입장에선 관객 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기자 : 그런데도 감독님은 홍보대행사 없이 이렇게 홀로 영화를 직접 알리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구수환 감독 : 이태석 신부의 삶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홍보대행사를 통해 알리면 관객은 더 올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지난 10년 간 이태석 신부의 삶의 궤적을 따라 조명하며, 그분의 삶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 설명하면 조금 더 신뢰해주실 거라는 생각에 전국을 혼자서 뛰어다녔습니다.

 

가난한 마을, 그가 지은 허름한 학교에서 벌어진 기적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울즈마 톤즈>에 이어서 영화 <부활>을 제작하시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감독 : 이 영화는 사비를 털어 제작했습니다. 돈을 벌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고,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가 지난 2019년에 59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깡마른 모습으로 저를 불러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어요. 하나는 이태석 재단을 계속 이끌어가 달라, 다른 하나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에 동생의 삶을 정리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태영 신부에게, 영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어요. 이태영 신부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기에 제가 용기를 드리려고 웃으면서 '신부님도 인터뷰하셔야합니다'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런데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이태영 신부는 돌아가셨고, 저는 꼭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 작은 학교를 짓고 가르쳤던 어린 제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제자들을 수소문했더니, 놀랍게도 이태석 신부처럼 의사가 됐거나 의대에 다니는 제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수단에 찾아갔더니 의대생이 된 제자 16명이 나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의사거나 의대생이 된 제자가 무려 57명에 달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남수단 작은 톤즈 마을에 신부님이 지은 허름한 학교에서 6년 만에 국립대 의대생 57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공무원, 대통령실 경호원, 언론인까지 모두 70명의 제자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저희 곁에 돌아왔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제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아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신부님 때문에 의사가 됐고 신부님처럼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자들이 병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을 보니 먼저 '어디가 아프세요?' 묻는 것이 아니라 환자 손부터 잡는 거예요. 가는 곳마다 손을 잡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진료를 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이태석 신부님이 해오던 진료 방법입니다'라고 답하더군요. '아이들이 신부님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이태석 신부 제자들이 한센인 마을에 가서 봉사 진료를 했어요. 60명 정도 사는 마을인데 환자 300명 정도가 모였어요. 의사가 없으니 주변 마을에서 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제자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쫄딱 굶으며 진료를 했어요. 어느 환자는 12년 만에 진료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환자에게 '의사가 당신 손을 잡았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물었더니 '이태석 신부님이 저희 곁에 돌아온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마음이 울컥했어요. 제자들은 '신부님이 우리 옆에 계신 거 같았습니다. 신부님 일을 우리가 대신해서 너무 기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단순히 제자들이 좋은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이태석 신부의 사랑이라는 것이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가는구나, 이것이야말로 부활의 의미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영화 제목은 <우리가 이태석입니다>였는데, 그 자리에서 제목을 <부활>로 바꿨습니다.

 

벤자민이라는 제자는 에티오피아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다가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자, 수단으로 돌아갔어요. 어디로 갔는지 통 연락이 안 되어서 찾아보니 톤즈 마을 작은 보건소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다들 스스로 이태석 신부의 제자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어요. 다른 제자들은 아직 의대생이지만, 한센인 마을을 계속 찾아 진료하겠다고 하더군요.

 

그에게 빠져든 이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간 방식 

 

기자 : 제자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자들에게 큰 사랑을 남기고 간 이태석 신부의 삶이 더 궁금해집니다. 이태석 신부가 처음에 남수단 톤즈 마을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구수환 감독 :

-퍼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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